2018년 여름 가뭄에 유럽 전역의 강물은 최저수위를 기록하며 ‘hunger stones’가 드러났다. 이는 수위가 낮아질 경우 재앙이 닥친다는 과거 세대의 경고이다. 엘베(Elbe) 강의 한 돌에는 ‘‘Wenn du mich siehst, dann wein‘라고 쓰여있었는데, 이 뜻은 이러하다. ‘날 보게 된다면, 울어라’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북극 지역에 큰 불이 났다.
시베리아에서는 영구동토층이 녹으며 드러난 메머드의 뼈가 활발히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현재 Active Distribution에 의해 재출간된 Desert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예언적으로 보인다.
Desert는 익명의 작가에 의해 출간된 이후 온라인 상에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책은 꽤 그럴듯한 전제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기후 변화에 대해 유의미한 수준의 제동을 걸 수 없을 것이고, Runnaway heating은 불가피하며 지구 대부분의 지역은 거주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전쟁, 영양실조, 이어진 질병에 대한 취약성 때문에 인구는 빠르게 감소할 것이다. 이는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라 할 수 없다. 인류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놀랄 것 없이, 그것은 허무주의자와 개인주의 아나키스트들이 추종하는 일종의 교단으로 발전했다.
기후 변화의 미래에 대한 걱정스러운 예측뿐만 아니라, Desert는 아나키즘 운동, 우리의 역량과 우리가 성취하길 기대할 수 있는 몇 가지 뼈저린 진실 또한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전세계적인 아나키스트 혁명이 완수될 것임을 제안하기 위해 아나키스트 연맹과 그룹들을 호출한다. 이런 제안은 비현실적이고, 궁극적으로 우린 사제들이나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는 환상을 팔고 있다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지점들이 있고, 확실히 그 안에는 약간의 진실이 담겨 있지만, 나는 이것이 우리의 메세지를 약간 오독한 결과라고 느낀다.
우리는 ‘아나키스트 혁명’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혁명은 자발적인 사건이고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이들을 자유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인 방향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불가피한 반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노동계급에 대한 단일 집단의 장악 가능성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 생각엔) 우리가 의미했던 건 우리가 한 번에 세상을 장악할 충분한 수의 아나키스트들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아니라, 결코 자본주의와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자본주의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면, 그것은 항상 우리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확장하는데 몰두할 것이다. 우리가 이를 근절하는데 성공할 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다.
저자 또한 ‘아나키스트들의 단일한 미래’이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것은 내가 몰두하던 가정이 아니다. 비교적 작은 나라의 작은 부분으로서 혁명적인 스페인에서는 일을 하기 위한 단일한 체계가 하나도 없었다. 어떤 마을은 돈을 금지했고, 어떤 마을은 돈을 유지했다. 반면에 어떤 마을들은 노동토큰(work tokens)을 발행했다. 우린 완벽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정해진 프로그램도 없고, 정해진 최종 목표도 없다. 아나키즘의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새로운 지역과 조건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상의 지점들이 보다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만, 결국 Desert가 주는 메세지는 귀기울여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아나키스트 운동가들 사이에는 우리가 완벽한 조직을 구성할 수 있거나 미래에 대한 완벽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다면 노동계급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 있다. 사실상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저조한 상황에 있지만, 불행히도 기후는 우리가 힘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우린 혁명이 우리 자신의 긍정적인 행동, 혹은 어떤 영광스러운 순간으로부터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국가가 시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다 떨어졌을 때 발생하는 국가의 붕괴로부터 올 가능성이 높다. 우린 이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그때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그렇다고 미래를 함께 상상하는 것이 가치없다는 뜻은 아니다. 유토피아가 어떻게 생겼을지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그곳에 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주문을 깨뜨릴 수 있고, 사람들이 서로의 새로운 관계와 나머지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도울 수 있다. 여기서 Desert는 중요한 메세지를 전한다. 이런 유토피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이 유토피아가 우리 코 앞에 있는 것처럼, 달성하기 쉬운 과업처럼 제시해선 안된다. 아나키스트가 조직하는 방식이 제공하는 지점들이 많지만 장기적인 운동으로서 각종 공동체에 제공할 대안적인 권력 구조를 구축할 수도 있다. 이것에 우리의 진정한 약점이 있다. 우리는 1930년대 스페인의 CNT가 아니다. 우리에겐 당장 내일 혁명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이득을 얻거나 방어할 수 있는 구조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현실감각은 아나키스트적인 사고방식을 복돋기 위한 희망적인 연설들 속에서 사라졌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는 말라테스타(Malatesta)가 다른 아나키스트들과 도시에서 봉기가 있은 후 어떻게 국민들을 먹일 수 있을지 논의했다. 이에 대해 그들은 ‘우린 창고에서 식량을 공급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창고에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음식이 있었을까? 말라테스타가 확인한 결과 거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도시가 철도를 통해 들여온 음식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 철도는 개방되는 즉시 군대를 위한 지원병력이 들어올 수 있는 철도였다. 그는 추측했다. ‘우리가 옥수수를 원한다면 대포와 마주해야한다’. 이는 현실주의와 혁명적인 흥분의 만남에 대한 유용한 이야기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Desert는 이를 인정한다. 우린 많은 걸 성취해낼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아나키스트의 재난 구호 활동을 보라. 하지만 자본주의 질서가 붕괴됨에 따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통합하려는 유일한 힘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Desert는 자본주의 문명이 유의미한 방식으로 시민들을 먹여 살릴 수 없게되면서 무너지는 미래를 그린다. 많은 이들이 남반구에서 죽을 것이지만(저자는 이 사실에 대해 약간 비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이전에 사람이 살지 않았던 북쪽으로 확장될 것이다. 앞으로 pockets of societies, 남들보다 더 아나키스트인 이들, 남들보다 더 성공한 이들만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구온난화로 파괴된 사회가 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가능한 다른 두 가지 디스토피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첫째,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로 국가는 이를 깨닫고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개입한다. 온대 북쪽의 산업화된 나라들은 기후 난민들을 막고 민족주의를 조장하기 위해 국경을 폐쇄한다. 미국가 유럽의 기업들이 구입한 아프리카의 땅은 우리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된다. 미국이 현지인들을 제압하고 식량 생산을 관리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기 전 얼마나 많은 공급차질을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디스토피아에서, 비록 강력한 국가 통제와 자원 배급 아래에서도, 사회는 온대지방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 지역 바깥의 사람들은 고객 국가가 되어 유럽과 미국에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생산을 강요받는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선진국과 그들의 이전 식민지 사이의 역동성을 가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둘째, 기후 파괴가 저온 지역의 가뭄과 기근으로 점점 더 명백해짐에 따라, 이산화탄소 포집과 같은 기술에 대한 잠재적인 보상이 커진다. 각 국가는 극단적인 날씨와 기반 시설의 고도화를 관리하기 위해 큰 빚을 지고 있는데, 이 사실은 이와 같은 기술의 개발이 기업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인류를 구할 힘이 있을 때, 그들은 우리에게 친절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제국을 위해 가능한 한 더 많이 뽑아낼 것인가? 이미 그들은 지역법을 과시하며 국제적 운영을 하고 있고, 더 나아가 그들을 위한 통화를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미래에서 기업들은 국가 밖에서 대체 권력 구조를 구축하는 자들이다. 이때 여유가 있거나 기술을 팔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후는 관리될 것이다. 다른 모든 이들에게 미래는 덜 장밋빛이다.
계획 이론(planning theory)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다룰 때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기획하고 각 시나리오와 함께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을 선택하고자 하는 접근법이 있다. 이런 접근을 종종 ‘후회 없는’ 의사 결정이라고 한다.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최선의 해결책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는 가능한 미래들에서 당신이 살아남도록 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당신은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았다.
Desert는 가능한 한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고, 나는 여기서 두 가지를 더 제시했다. 어떤 시나리오가 사실로 밝혀지든, 우리에게 이익이 될 전략을 개발할 수 있을까? 나는 각각의 시나리오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양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믿을 수 없을만큼 유익할 것이라고 우선 제안하고 싶다. 우리가 국가나 기업에 덜 의존할 수록, 그들이 우리를 노예로 만들 가능성이 더 적어진다.
불행히도, 땅을 되찾는 것은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소 까다로운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이것이 우리가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각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양하는 것은 지역사회 규모의 태양광 발전 계획을 세우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때가 되면 우리는 송전망과 단절되어 우리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에너지 시스템을 갖게 될 것이다. 공동체 성장 프로젝트는 농업에 대한 지식을 높이고, 지역 사회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상호 원조를 보여줄 것이다. 집단 치유 시간에는 자기 치유를 위한 우리의 역량을 구축하고, 국제 네트워크의 성장은 다른 지역 사회가 어떻게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승리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키울 것이다. 우리의 조합은 생산과 유통 시스템에 대한 지역 규모에서의 이해를 서로 다른 산업의 지식과 연결하는 대체 구조를 제공할 것이다.
만약 국가 붕괴, 국가 지배 혹은 기업주의의 가능한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이 프로젝트들 각각은 우리의 가능성을 향상시킬 것이다. 이런 결정들이 우리가 앞으로 살아남고 번창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내릴 수 있는 ‘후회 없는’ 결정이라 할 수 있겠다. Desert의 가장 큰 힘은 우리가 이러한 단계를 밟고 있고, 우리의 운동이 오늘날 실제로 어디에 위치하는지 깨닫게 만드는 것에 있을 것이다.
Desert는 미래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아나키스트 사상에 환영할 만한 저작물이다. 기후 운동에서는 몇 년 동안 기후 문제에 있어 인식과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프레임을 짜낼 방법에 대한 논쟁이 있어왔다. 우리가 지금 행동하면 미래에 희망적인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메세지를 줘야 하는가, 우리가 잘못할 경우 초래될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말해야 하는가? 결국 나는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즉시 행동하지 않을 경우 위험해질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Desert는 논쟁에 건강한 파멸을 주입해준다. 희망을 잃진 말자. 다른 미래는 가능하다.